본문 바로가기
공부/그림

나의 실력을 의심하게 된다면, 인터넷에 현혹되지 말자 (그림/미술)

by 고궁디 2023. 2. 7.

마인드셋에 관련된 글입니다만 필자의 가치관을 설명하기 이전 학생 때 저의 과거록을 적어놨습니다. 상당히 길 수 있으므로 유의해주세요.

 

 

필자의 전공은 미술입니다. 예체능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익숙해 하고 많이 접해본 그래픽, 이미지, 사진에 관한 모든 것을 꿰차고 있어야 하죠. 사람들은 언제나 이미지를 봅니다. 뉴스 기사 사이에 실린 그림,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웹툰, 심지어는 스스로도 샤프로 그림을 그려보곤 하죠. 그정도로 그림은 사람들에게 익숙합니다.

 

눈을 뜨고 거울 앞의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던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과 못 그리는 사람을 분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미술에 대해서 접근성이 가장 가깝고 항상 접해왔던 것이니까요.

 

중세 명화들부터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주아주 예전부터 그림이라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어떨까요?

 

저의 경우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마저 눈이 높다는 걸 깨달은 순간 미술의 난이도가 상상 이상으로 높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림,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먹고 살기 위해선 그들에게 저의 그림이 좋게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좋게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더 알아야 하는 것도 많고 더 많은 시간을 공들여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뜻과 같았죠. 어중간한 실력으로는 어디 내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쉬운 길은 없다는 걸 누구나 뼈저리게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미술을 시작하며 각오를 했던 일이었습니다. 무엇이던 어떤 일이건 노력 끝에 결실을 맺는다는 말은 일맥상통했으니까요. 하지만 미디어를 들여다 보면 볼수록 그런 생각이 정말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미술은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서 초등학생이 수준급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영상 미디어 사이트에는 관련된 강좌가 넘쳐나고 있고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을만큼 다양한 방법들이 많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스스로의 노력에 귀기울여야 하는 저는 인터넷 상단을 보면서 항상 침울해 했습니다. 상단에는 언제나 새로이 떠오르는 어린 작가들이 승승장구 하고 있었거든요.

 

그들은 10할 중 2할 정도밖에 없는 소수의 집단이지만 인터넷은 그들을 띄워주고 상단에 고정함으로써 8할의 사람들에게 더 높은 커트라인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없었지만 이 나이엔 이정도 그려야 잘 그리는 사람.이라는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저의 경우는 다른 사람의 그림과 저의 그림을 많이 비교했습니다. 일종의 초조함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아직 성인이 되지도 않았으면서 지금 생각하니 조금 웃기기도 합니다. 지금도 이제서야 스타트 라인에 선 것일 뿐인데.

 

많은 책을 보고 요약 영상을 보고 영상을 봤습니다. 그림을 예쁘게 포장하는 법. 그림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테크닉.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화풍. 인기가 없는 나의 그림체를 바꾸는 방법.

 

점차 그림이라는 것이 재미 없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잘 맞는 그림이 아닌 잘 그리는 그림이 아닌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그렇게 한동안 연필을 잡고 있지 않던 저는 심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누가 보면 미술이랑은 연이 없는 사람인 양 멀리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 엄마는 그런 제가 이상해보였는지 한 마디를 툭 하셨습니다.

'요즘 그림은 안 그려?' 정신이 퍼뜩 차려지며 제가 그리다 만 캔버스들을 찾아 둘러봤습니다. 그 때 봐도 정말이지 재미없게 그린 것이 티가 난 그림들이었습니다.

 

나의 취향껏 그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연필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손에 모터를 단 마냥 낙서라고 할 수 있는 그림들을 5장 훨씬 넘게 그려내고 나서야 너무 나 자신을 억눌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시작점이 다르고 얼만큼의 거리인지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느 정도의 호흡으로 뛰는 지도 알 수 없고요.

다만 제가 이런 시간들을 보내며 깨달은 것은 각자의 페이스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 시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반면 전공을 바꿔서 새로 도전하는 분들 또한 계시겠죠. 저 또한 이르게 시작한 편이긴 하나 느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미디어는 최상위의 사람들밖에 띄워주지 않습니다. 분명 중간지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연소, 최초 같은 타이틀을 붙여가며 사람들 앞에 보여주기 일쑤입니다.

 

물론 그것도 그들의 사정이 있으니 더 깊이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마음이 흔들리려는 상황에서 자신을 꿋꿋이 붇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닌가,하는 저의 의견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저의 글이 작은 도움이나마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모두 힘내고 행복합시다!

댓글